베이징 입성
곡부 궐리빈사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려 베이징에 가까워오니 벌써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베이징에 다가오니 차들이 무척 많이 밀렸다. 거의 1시간을 넘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기다리는데, 검문검색이 엄청 심했다. 마치 전쟁 영화에서나 보듯이 차의 트렁크도 열어보고, 승용차의 뒷좌석은 창문을 열어서 후레쉬로 비춰 보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인은 신분증 하나로 모든 체크가 가능하지만, 외국인은 체크가 안되어 결국에는 비상등을 켜고 사무실로 가서 여권으로 베이징에 외국인 등록을 해야만 했다. 예전에 신장 지역을 여행하면서 가는 도시마다 외국인 등록을 해야만 기차역을 들어갈수 있고, 나올수가 있었습니다.
하여튼 우여곡절끝에 베이징의 외곽에 예약해 놓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베이징] 하루 만에 마스터하는 베이징 핵심 코스; 천안문-전문가-고궁-북해공원
[요약 정보]
AM 05:40 | 새벽을 깨우는 천안문 국기게양식과 전문대가 산책
새벽 5시 40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베이징에 오면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천안문 국기게양식을 보기 위해서였죠. 붉게 동이 터오는 하늘 아래, 엄숙하게 펄럭이는 오성홍기를 바라보며 베이징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실감했습니다.
게양식이 끝난 후 천안문을 가로질러 명·청 시대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전문대가(前门街, 치엔먼다지에)로 이동했습니다. 고풍스러운 패루와 전차 철길이 인상적인 이곳에서 활기찬 아침 분위기를 구경하며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마쳤습니다.
PM 12:00 | 공유 자전거로 달려간 고궁(자금성)과 경산공원의 전경
식사 후 전문대가에서 공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시 천안문을 가로질러 고궁(자금성)으로 향했습니다. 워낙 거대한 규모라 구석구석 모든 건물을 다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중심축을 따라 주요 건물 위주로 영리하게 관람을 진행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빛나는 황금빛 지붕과 백석 돌계단은 언제 봐도 압도적입니다.
고궁 관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던 '구룡벽'을 감상한 뒤, 고궁 북문으로 나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경산공원(景山公园)에 올랐습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고궁의 전경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기와지붕의 바다를 보며 옛 천자들의 권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PM 03:00 ~ Night | 유유자적 북해공원과 완벽한 마무리
경산공원을 내려와 발걸음을 옮긴 곳은 황실의 정원이었던 북해공원(北海公园)이었습니다. 잔잔한 호수 너머로 우뚝 솟은 백탑이 맞이해 주는 이곳은 고궁의 엄숙함과는 또 다른 평화로움을 선사했습니다. 호숫가를 산책하며 이곳에 있는 또 하나의 구룡벽을 마주했죠.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북해공원 안에서 운치 있는 저녁 식사를 즐긴 뒤 지하철을 타고 편안하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베이징의 정수를 모두 겪은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의 스페셜 포커스: 중국의 3대 '구룡벽(九龍壁)'을 만나다
오늘 여정의 가장 특별한 의미는 바로 하루 만에 중국 3대 구룡벽 중 2개를 직접 눈으로 담았다는 점입니다.
중국에는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3대 구룡벽'이 존재합니다.
1. 베이징 고궁(자금성)의 구룡벽 (오늘 관람)
2. 베이징 북해공원의 구룡벽 (오늘 관람)
3. 산시성 대동시(大同市)의 구룡벽
구룡벽은 황궁이나 사찰의 문 맞은편 또는 마당에 세워진 일종의 가림벽(조벽, 照壁)입니다. 밖에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고, 나쁜 기운이나 악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풍수지리적 역할을 합니다. 색유리 기와(유리전)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벽면에 아홉 마리의 용이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듯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1. 고궁(자금성) 구룡벽 vs 북해공원 구룡벽
● 고궁의 구룡벽: 황극전(皇極殿) 앞에 위치해 있으며, 청나라 건륭제 시절에 지어졌습니다. 정교하고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며, 황권의 위엄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 북해공원의 구룡벽: 역시 건륭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고궁의 구룡벽과 달리 '양면' 모두에 아홉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벽입니다. 앞뒤로 총 18마리의 큰 용이 있고, 작은 용들까지 합치면 수백 마리에 이르는 용이 숨어 있어 예술성이 매우 높습니다.
2. 구룡벽에 담긴 숫자 '9'와 용의 의미
왜 하필 아홉 마리의 용일까요? 동양 철학에서 숫자 '9(九)'는 양(陽)의 수 중 가장 큰 수로, 무한함과 극치를 뜻하며 오직 '천자(황제)'만을 상징하는 숫자였습니다. 하늘을 상징하는 황제(용)와 가장 높은 숫자(9)가 결합한 구룡벽은 "이곳은 천자가 머무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공간"임을 온 세상에 공포하는 상징물인 셈입니다. 파도와 구름을 헤치며 여의주를 향해 날아오르는 용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황실의 영원한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곡부에서 성인의 발자취를 느끼고, 베이징에서 천자의 기운과 마주한 이번 기행.
하루 동안 고궁과 북해공원의 구룡벽을 모두 만나며 그 화려한 유리기와의 색채에 취하고, 그 속에 담긴 옛사람들의 풍수적 염원과 황권의 무게를 깊이 있게 느껴본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베이징을 여행하신다면 이 살아 숨 쉬는 아홉 용의 위용을 꼭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세부 정보]
1.천안문 국기 게양식
공항보다 엄격한 검문검색을 뚫고 천안문 광장 국기 게양식 직관 후기
안녕하세요! 여행 블로거 [화평지인]입니다. 오늘은 베이징 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중국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천안문 광장(天安门广场)' 방문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새벽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천안문 광장으로 향할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인내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직접 겪은 생생한 후기와 꿀팁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노트 문장까지 다 읽어본다고?!" 공항보다 엄격했던 역대급 검문검색
천안문 광장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지하도를 지나 드디어 광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인파의 줄이었습니다.

베이징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광장으로 들어가려는 열기는 대단했는데요. 진짜 놀라웠던 건 검문검색의 엄격함이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보안 검사를 받아봤지만, 여기는 공항 검색대보다 훨씬 더 깐깐하고 엄격하더라고요. 소지한 모든 물건을 하나하나 다 검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방 속에 있던 개인 노트와 메모장까지 펼쳐서 적힌 글자들을 일일이 읽어볼 정도였습니다.
혹시 모를 보안 요소를 철저하게 통제하려는 목적이겠지만, 소지품은 최대한 안가지고 가는게 좋을것 같아요!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통과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이 고생을 하면서 구경할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마저 들었지요! (천안문 광장 가실 분들은 꼭 시간 여유를 넉넉하게 두고 가세요!)
어스름한 새벽, 숨 죽이며 기다린 국기 게양식 준비
기나긴 검문을 마치고 드디어 광장 안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직전, 하늘이 붉고 푸르게 물들어가는 어스름한 새벽녘이었는데요. 이미 명당 자리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다들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숨을 죽인 채 국기 게양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저 멀리 인민대회당 건물 앞으로 넓게 펼쳐진 광장과 아직은 깃발이 걸리지 않은 하얀 국기봉을 보니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하더라고요. 마침내 붉게 펄럭이는 오성홍기, 게양식 완료!
잠시 후, 절도 있는 발걸음의 군인들이 등장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국기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타이밍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게양식이 끝나고 마침내 국기봉 꼭대기에서 붉은 오성홍기가 바람을 맞아 활짝 펄럭이는 순간, 주위에 있던 중국인들이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비록 새벽부터 일어나 고생은 했지만, 베이징의 아침을 여는 이 거대하고 엄숙한 의식을 직접 눈으로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기가 모두 올라가고 게양식이 마무리되자, 이번 의식의 주인공들이었던 인민해방군 의장대의 퇴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데도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어요. 수십 명의 군인들이 흐트러짐 하나 없이 자로 잰 듯 완벽한 대형을 유지하며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그 절도 있는 발걸음 소리와 아우라가 광장 전체를 압도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수많은 관광객들도 이 장관을 놓치지 않으려 일제히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연신 셔터를 누르기 바빴는데요. 인민대회당 건물의 웅장한 배경과 아침 햇살, 그리고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행진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 같은 연출을 자아냈습니다.
엄격했던 새벽 검문검색의 피로가 이 멋진 퇴장 행진을 보는 순간 완전히 날아가는 기분이었답니다.
역사 책 속 한 페이지 같은 천안문과 마오쩌둥 초상화
게양식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천안문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붉은 벽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천안문의 자태는 정말 압도적이더군요.

뉴스나 역사 책에서만 보던 그 거대한 마오쩌둥 초상화와 '중화인민공화국만세(中华人民共和国万岁)', '세계人民대단결만세(世界人民大团结万岁)'라는 문구가 눈앞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건물의 스케일이 워낙 커서 아래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가 실감이 납니다.
천안문 뒤편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웅장한 건물들
발걸음을 옮겨 천안문 뒤쪽 구역으로 가보았습니다. 천안문 뒤편으로도 중국 특유의 거대하고 화려한 황실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황금빛 기와지붕과 붉은 기둥, 그리고 정교한 돌난간들이 어우러진 건물 위로 아침 해가 비치니 도시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었습니다. 자금성으로 이어지는 이 길목은 걷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역사 속을 걷는 기분이 듭니다.
세계 최대 규모, 탁 트인 천안문 광장의 전면 뷰
다시 고개를 돌려 반대편인 천안문 광장 전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시 광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 트인 공간감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인민영웅기념비와 그 뒤로 길게 늘어선 인민대회당의 기둥들이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아주 깔끔하고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새벽의 엄숙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맑고 상쾌한 베이징의 아침 풍경이 완성되었네요.
천안문 광장 방문 시 꼭 알아두어야 할 실전 팁!
여권 지참 필수: 신분 확인 및 검문이 매우 철저하므로 여권은 무조건 실물로 챙기셔야 합니다.
보안 검색 시간 감안하기: 앞서 말씀드렸듯 소지품(특히 필기구, 메모장, 노트북 등)을 아주 꼼꼼히 봅니다. 예상보다 대기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 있으니 국기 게양식 시간에 딱 맞춰 가기보다는 최소 1시간~1시간 반 전에는 도착하시는 걸 추천해요.
2.전문가(前门街)
전문대가(前门大街, 치엔먼다지에)는 중국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업 거리이자, 베이징의 '명동'이나 '인사동' 같은 곳입니다. 천안문 광장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어 여행 코스로 함께 묶어 방문하기 아주 좋은 곳이죠.
이곳의 핵심적인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 드릴게요.
1) 600년 역사의 전통 상업 거리
명나라·청나라 시기부터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천단공원으로 이동할 때 가던 '황제의 길(御道)'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황실 가족과 고관대작들이 모여들면서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로 발전했습니다. 명말청초의 고풍스러운 전통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베이징의 전통 유명 브랜드(老字号)들이 모인 곳
중국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브랜드와 맛집들이 이곳에 본점을 두고 있습니다.
전취덕(全聚德, 취안쥐더): 중국을 대표하는 베이징 카오야(북경오리) 전문점의 본점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도향촌(稻香村, 다오샹춘): 중국 전통 과자와 베이커리를 파는 유명한 노포입니다.
그 외에도 중국 전통 약방인 '동인당(同仁堂)', 수제 신발로 유명한 '내련승(内联升)' 등이 모여 있어 중국의 전통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뉴트로(New-tro) 감성과 트램(전차)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전통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세련됨이 공존하는 거리로 탈바꿈했습니다.
특히 전문대가의 명물인 '당당처(铛铛车)'라고 불리는 1920년대 스타일의 구식 트램이 도로 한복판을 천천히 운행하는데, 이 전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등 현대적인 매장들도 중국 전통 건축물 외관을 그대로 살려 입점해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냅니다.
4). 아기자기한 골목, 대책란(大栅栏, 다스란)과의 연결
전문대가 메인 도로 옆으로는 대책란(大栅栏), 선어구(鲜鱼口) 같은 오래된 좁은 골목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메인 거리가 깔끔하고 웅장하다면, 이 골목들은 서민적인 베이징의 옛 정취(호통 문화)와 길거리 간식들을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웅장한 두 건축물은 옛 베이징 성곽의 남쪽 주문(主門)이었던 '정양문(正阳门, 젠양먼)'과 그를 보호하던 '정양문 화살루(箭楼, 지엔러우)'입니다.
오른쪽에 크게 보이는 붉은 기둥의 누각이 정양문(성문 성루)이고, 그 뒤편 왼쪽에 요새처럼 서 있는 회색빛 건물이 화살루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두 건물의 위용이 대단한데요,
1. 베이징의 앞문, '전문(前门)'의 진짜 이름: 정양문(正阳门)
우리가 흔히 '전문대가'라고 부를 때의 '전문(前门, 치엔먼)'은 사실 이 정양문의 별칭입니다. 황제가 머무는 자금성(고궁)을 기준으로 바로 앞에 있는 정남쪽 성문이라 하여 백성들이 편하게 '앞문(전문)'이라 불렀던 것이 거리의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 명·청 시대의 주문(主門): 1419년(명나라 영락제 시절)에 처음 세워진 이 문은 베이징 내성을 둘러싼 9개의 성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정문(正門)' 대접을 받았습니다.
● 황제 전용의 문: 이 문의 가운데 아치형 통로는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가, 황제가 일 년에 두 번 천단공원으로 제사를 지내러 갈 때나 농사를 지으러 선농단으로 행차할 때만 열렸습니다. 즉, 황제의 기운이 드나들던 신성한 통로였습니다.
2. 왼쪽에 보이는 요새: 정양문 화살루(箭楼)
사진 왼쪽 뒤편에 보이는 독특한 건물은 성문을 옹위하고 적의 공격을 1차로 막아내기 위해 성문 앞에 방어벽(옹성)을 쌓고 그 위에 세운 '화살루(箭楼)'입니다.
● 사방의 눈, 화살 구멍: 건물의 벽면을 자세히 보시면 작은 네모난 창문들이 촘촘하게 뚫려 있습니다. 총 94개의 구멍이 나 있는데, 평소에는 문을 닫아두었다가 적이 침입하면 이 구멍을 통해 화살과 총을 쏘아 성문을 방어하던 군사 요새였습니다.
● 원래는 정양문 성루와 이 화살루가 반원형의 거대한 옹성(벽)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1900년대 초 현대식 도로와 철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연결 벽이 철거되어 지금처럼 두 개의 독립된 건물로 떨어져 남게 되었습니다.
3. '내성과 외성'을 가르던 베이징의 중심축
이 정양문과 화살루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경계선이었습니다.
● 신분의 경계: 명·청 시대에는 이 정양문을 기준으로 북쪽(자금성 방향)은 황족과 고위 관료, 팔기군이 살던 '내성(內城)'이었고, 정양문 남쪽(전문대가 방향)은 서민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모여 살던 '외성(外城)'이었습니다.
● 그래서 이 문을 통과해 전문대가로 내려가는 순간, 황실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동인당, 대관루, 이과두주 발원지 같은 활기차고 역동적인 서민 문화(상업 지구)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추운 겨울날의 베이징의 아침달을 바라보며
전문가로 향하면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푸른 여명 위로 하얗고 둥근 잔월(아침달)이 선명하게 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움직여 천안문을 구경하고, 베이징의 가장 청량하고 고요한 순간이었습니다.
황제만이 다닐 수 있었던 웅장한 정양문을 통과해 활기찬 서민들의 전문대가로 향하던 이 길목은, 옛 베이징의 신분과 공간의 변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역사적 연결고리입니다.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정양문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전차는 베이징 전문대가(前门街)의 명물이자 상징인 '당당처(铛铛车)'라고 불리는 옛 유람 전차(트램)입니다.차량 정면에 '전문 1호(前门一号)'라고 적힌 글씨와 선명하게 깔린 철길이 눈에 띄는데요. 백 년 전 베이징의 낭만을 싣고 달리던 이 전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1. '당당처(铛铛车)'라는 독특한 이름의 유래
이 전차가 '당당처'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의외로 직관적입니다. 과거 이 전차가 선로를 달릴 때 마차나 보행자들에게 "비켜라"고 신호를 주기 위해 운전사가 발로 발판 밑의 구리 종을 밟았는데, 그때마다 "당~ 당~ (铛~ 铛~)" 하는 맑은 종소리가 온 거리에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구한말의 '전차 종소리'를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2. 베이징 최초의 현대식 대중교통
● 1924년의 시작: 이 전차는 1924년 12월 18일, 베이징에 최초로 도입된 유궤 전차(궤도 트램) 노선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전문(前门)에서 출발해 서직문(西直门)까지 운행하던 노선이 시초였습니다.
● 시대의 변화와 퇴장: 당시에 가마나 인력거, 마차만 보던 베이징 시민들에게 철길 위를 스스로 달리는 전차는 문화적 충격이자 가장 모던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도시가 현대화되고 버스와 지하철이 발달하면서,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1958년에 베이징 전역에서 선로가 철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었습니다.
3. 올림픽과 함께 돌아온 문화유산
현재 전차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전문대가 지역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50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된 관광용 전차입니다.
● 과거와 현대의 만남: 외관은 1920년대 청회색과 목재 느낌의 빈티지한 디자인을 그대로 살렸지만, 내부 시스템은 친환경 리튬 배터리로 구동되는 최첨단 전기차입니다.
● 운행 구간: 전문대가 남북을 관통하는 약 800m의 전용 선로를 시속 5~10km 내외로 유유자적하게 움직입니다.
풍경의 묘미
전차 몸통에 새해를 축하하는 화려한 붉은색 춘절(설날) 광고 문구들이 랩핑되어 있어 축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웅장한 '정양교(正阳桥)' 패루를 배경으로 징검다리 같은 선로를 따라 걸어오는 사람들과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당당처의 모습은, 마치 1920년대 올드 베이징의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선로를 따라 땡땡거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걷던 전문대가의 아침 산책은 참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당처를 직접 타보지는 않더라도, 이 클래식한 전차가 배경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거리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문대가(前门大街)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이고 로컬 색이 짙은 '전통 베이징식 분식·요리 전문점'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풍경이 아주 정겹고 맛있어 보이네요!
간판과 메뉴판에 적힌 글씨를 바탕으로 이 식당이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인지, 그리고 이 골목의 매력이 무엇인지 하나씩 쉽게 풀어 드릴게요.
1. 간판으로 보는 이 식당의 대표 메뉴 3가지
간판을 보면 "百年卤煮(백년로저)", "老北京炸酱面(노북경작장면)"이라고 크게 적혀 있습니다. 베이징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해 온 가장 대표적인 서민 음식(소울 푸드)을 파는 곳입니다.
老北京炸酱面 (노북경 짜장면):
가운데 노란 간판에 크게 적힌 메뉴입니다. 한국식 짜장면의 원조 격인 중국 전통 '베이징 짜장면'입니다. 한국 짜장면처럼 달거나 국물이 많지 않고, 춘장(황장)을 볶아 만든 되직하고 짭조름한 소스에 오이, 숙주, 콩 등 신선한 채소 고명을 면과 함께 비벼 먹는 담백한 스타일입니다.
卤煮火烧 (루주훠사오):
오른쪽 상단 전광판에 있는 메뉴로, 베이징의 대표적인 전통 요리입니다. 돼지 내장(곱창, 허파 등)과 두부 튀김, 그리고 단단한 밀가루 빵(훠사오)을 진하고 짭조름한 한약재 장국에 함께 넣고 푹 끓여낸 일종의 '중국식 내장 국밥/전골'입니다. 사진 속 식당 내부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김의 주인공이 바로 이 녀석일 확률이 높습니다. 내장류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별미입니다.
门钉肉饼 (먼딩로우빙 - 문고리 고기 파이):
우측 빨간 간판에 동글동글하게 구워진 만두 같은 음식입니다. '먼딩(门钉)'은 중국 전통 대문에 박혀 있는 동글동글한 '문고리 장식(문정)'을 말하는데요, 그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두툼한 밀가루 피 안에 소고기와 파로 만든 육즙 가득한 소를 넣고 지지듯 구워낸 일종의 고기 호떡/군만두입니다. 한 입 베어 물면 육즙이 팍 터지는 게 특징입니다.
地道北京味 (디도북경미):
"지도(地道)"는 중국어로 '오리지널', '제대로 된', '토박이의'라는 뜻입니다. 즉, "진짜 제대로 된 베이징의 맛!"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문구를 걸고 영업하는 곳입니다.
2. 눈길을 사로잡는 주변의 베이징 길거리 간식들
冰糖葫芦 (탕후루):
식당 왼쪽을 보면 붉은색 나무 거치대에 꼬치들이 잔뜩 꽂혀 있죠? 한국에서도 대유행했던 '탕후루'입니다. 베이징은 탕후루의 본고장인데, 특히 겨울철 베이징 거리에서 먹는 탕후루가 원조입니다. 전통 방식인 산사나무 열매(붉은 열매) 외에도 다양한 과일에 투명한 설탕 시럽을 입혀 달콤새콤하게 즐기는 간식입니다.


중국 길거리 음식 문화(특히 베이징 왕푸징이나 일부 야시장 골목)의 오랜 이색 명물인 '곤충 및 특수 부위 꼬치' 매판대!
곤충뿐만 아니라 절지동물, 파충류까지 아주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떤 것들인지 하나씩 설명해 드릴게요.
1. 윗줄 (왼쪽 ➡️ 오른쪽)
첫 번째 트레이 (왼쪽 끝): 매미 유충 (또는 번데기)
땅속에서 자라다 나온 매미의 유충(굼벵이 상태)이나 번데기 종류입니다. 중국에서는 고소한 맛으로 튀겨 먹는 대중적인 곤충 요리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 트레이: 매미 (성충)
날개가 돋아난 매미 성충을 통째로 꼬치에 꿴 것입니다.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번데기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세 번째 트레이: 대나무 벌레 (竹虫, 주충)
대나무 속에서 자라는 하얗고 통통한 애벌레입니다. 비주얼은 조금 장벽이 있지만, 막상 튀겨놓으면 감자튀김이나 팝콘처럼 아주 고소해서 의외로 인기가 많은(?) 곤충입니다.
네 번째 트레이 (오른쪽): 실해룡 / 바다 실뱀 (Sea Dragon)
이건 곤충은 아니고 실말이나 실해룡 종류의 말린 바다생물(파충류/어류 계통)입니다. 중국에서는 약재나 이색 안주용 꼬치로 종종 등장합니다.
🦂 2. 아랫줄 (왼쪽 ➡️ 오른쪽)
첫 번째 트레이 (왼쪽 끝): 메뚜기 (또는 협종)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볶아 먹던 메뚜기 꼬치입니다. 다리와 날개의 바삭한 식감 덕분에 곤충 꼬치 중에서는 그나마 진입장벽이 낮은 편입니다.
두 번째 트레이: 대형 전갈 ( 큰 녀석들)
검고 큼직한 황제전갈 종류입니다. 집게와 독침이 있는 꼬리까지 아주 생생하게 꽂혀 있습니다. 튀기면 독 성분은 열에 의해 분해되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세 번째 트레이: 지네 (蜈蚣, 오공)
수많은 다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대형 지네 꼬치입니다. 한약재로도 쓰이는 지네를 통째로 기름에 튀겨 먹는 형태로, 시각적인 충격이 가장 큰 꼬치 중 하나입니다.
네 번째 트레이 (오른쪽 끝): 소형 전갈 ( 작은 녀석들)
중국 야시장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 상품인 작은 전갈입니다. 살아있는 전갈을 즉석에서 기름에 튀겨주는데, 맛은 그냥 '바삭하고 짭조름한 새우깡'이나 '꽃게 튀김' 맛과 아주 유사해서 호기심에 도전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습니다.

중국 중의약(한의학)의 자존심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베이징 동인당(同仁堂, 통런탕) 총본점(老店)' 입니다.
3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역사적인 본산입니다. 검은 현판에 황금색으로 힘 있게 쓰인 '동인당(同仁堂)' 세 글자가 주는 위엄이 대단한데요, 이곳에 얽힌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1. 350년 역사, 황실이 선택한 '어약방(御藥房)'
● 1669년의 시작: 동인당은 청나라 강희 8년(1669년), 낙현삼(樂顯揚)이라는 의관에 의해 처음 세워졌습니다. '동인(同仁)'이라는 이름은 《주역》에서 유생과 백성,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하고 치료한다"는 뜻에서 따왔습니다.
● 황실 전용 약방 지정: 뛰어난 효능 덕분에 1723년 청나라 옹정제는 동인당을 황실 전용 약방(어약방)으로 지정했습니다. 이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188년간 무려 8대 황제(옹정, 건륭, 가경, 도광, 함풍, 동치, 광서, 선통)의 어용 약품을 독점 공급하며 중국 최고의 약방으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드라마 《대택문(大宅門)》의 실제 모델이 바로 이 동인당 가문입니다.
2. "아무도 보지 않아도 양심은 안다" — 동인당의 철학
동인당이 수백 년간 중국인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온 비결은 엄격한 품질 관리에 있습니다. 점포 내부에 걸린 유명한 문구(訓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炮制虽繁必不敢省人工, 品味虽贵必不敢减物力" (약재를 법제하는 과정이 아무리 번거로워도 일손을 절대 줄이지 않을 것이며, 약재의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좋은 재료를 절대 아끼지 않는다.)
수많은 약방이 이윤을 위해 재료를 속일 때도, 동인당은 "하늘이 보고 사람이 안다"는 신념으로 정량을 지켰기 때문에 황실과 백성 모두에게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3. 대표 명약과 현대의 동인당
한국인들이 베이징 여행을 오면 이곳 총본점에 들러 부모님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찾는 명약들이 있습니다.
● 우황청심환(牛黄清心丸): 동인당의 우황청심환은 황실 비법 그대로 천연 우황과 사향을 사용해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안궁우황환(安宫牛黄丸): 고열이나 뇌졸중 등 응급 상황에 쓰이는 동인당 최고의 명약 중 하나입니다.
본점(老店)의 관람 포인트
정문 양옆을 보시면 아주 독특한 석상 두 마리가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자상이 아니라, 전통 신화 속 영수이자 약재의 효능을 상징하는 해태(또는 기린/백택) 형상의 상이 세워져 있어 황실 약방으로서의 권위를 더해줍니다.
현재 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서는 전통적인 한약재와 청심환 등을 판매하고, 2층과 3층에서는 백 년 전 쓰던 약탕기와 고문서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자 명의들이 직접 진맥을 하고 처방을 내리는 중의병원이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품과 동양의학에 특히 흥미있는 나로서는 중국 전통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의 정점인 이 동인당 본산을 직접 눈으로 본것만으로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대관루 영화관, 동인당과 함께 전문대가 및 다스란(대책란) 거리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역사적 명소입니다.
중국인들의 대중적인 백주(고량주)이자 서울의 서민들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이과두주(二锅头酒, 얼궈터우주)가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발원지, 바로 '원승호(源升号, 위안셩하오) 주방' 옛터에 세워진 '红星(홍성)二锅头 박물관'입니다.
현판에 적힌 황금색 글씨 '红星二锅头(홍성이과두)'와 정문 양옆에 서 있는 장인들의 동상이 이곳의 백 년 내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곳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와 의미를 설명해 드립니다.
1. 1680년, 이과두주(二锅头)라는 이름이 태어난 곳
이곳은 청나라 최고의 전성기였던 강희 19년(1680년), 대동 출신의 조씨 세 형제(조존인, 조존의, 조존례)가 내려와 '원승호(源升号)'라는 술도가를 차리면서 역사가 시작됩니다.
● 기존 술의 문제점: 당시에 북경에서 유행하던 증류주(烧酒)는 맛이 너무 강하고 폭발적이라 대중들이 마시기에 무리가 있었습니다.
● 세 형제의 혁신 (이과두의 유래): 조씨 형제는 술을 증류할 때 냉각수 역할을 하는 솥(锅)을 세 번 교체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 첫 번째 솥으로 걸러낸 술(일과두)은 불순물이 많아 맛이 너무 독했고,
○ 세 번째 솥으로 걸러낸 술(삼과두)은 밍밍하고 잡내가 섞여 있었습니다.
○ 오직 두 번째 솥(二锅)의 냉각수로 받아낸 중단부의 술만이 가장 순수하고, 향이 부드러우며 감칠맛이 났던 것이죠.
● 이 공법을 '掐头去尾取中段(착두거미취중단: 처음과 끝은 버리고 중간만 취한다)'이라고 부르며, 이때부터 이 방식으로 만든 술을 백성들이 '두 번째 솥에서 나온 대가리(가장 좋은 술)'라는 뜻으로 '이과두(二锅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2. 신중국 건국과 '紅星(홍성)'의 탄생
1949년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면서 정부는 민간 술도가들을 거두어들여 국가가 관리하는 최초의 국영 양조장을 설립했습니다. 이때 원승호를 비롯한 북경의 유서 깊은 12개 양조장이 하나로 통합되어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사진 속에 보이는 '홍성(红星)' 이과두주입니다. 1949년 10월 1일 개국대전 때 축하주로 쓰인 술도 바로 이 홍성 이과두주였습니다.
3. "文官闻香落轿, 武官知味下马" (문관은 향에 가마를 멈추고, 무관은 맛에 말에서 내린다)
박물관 정문 오른쪽을 보시면 호방하게 술을 마시거나 권하는 옛 장인(혹은 마부)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과거 원승호 주방 시절, 이곳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술 향기가 얼마나 진했던지 "글 공부하는 문관은 가마에서 내리고, 칼을 차고 가던 무관은 말에서 내려 술을 찾았다"는 고사가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박물관 내부의 묘미 (현재)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부에는 옛 청나라 시대의 '전점후창(前店后厂: 앞에는 상점, 뒤에는 양조 공장)' 구조가 고스란히 복원되어 있습니다. 300년 전 조씨 형제가 술을 찌던 오래된 부엌 아궁이 유적과 전통 술독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갓 짜낸 이과두주 원액을 무료로 시음해 볼 수 있는 바(Bar)도 마련되어 있어 애주가들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중국 영화의 탄생지'라 불리는 대관루 영화관(大观楼影城, 다관러우 시네마) 내부의 전시 공간입니다.
'中国电影诞生地 放映设备展' (중국 영화 탄생지 방영 설비전)이라는 글자와 오래된 영사기들이 이곳의 정체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중국 영화의 시작: 《정군산(定军山)》의 최초 상영지
● 1905년의 역사: 1905년, 중국 최초의 민족 실업가이자 사진사였던 임경태(任庆泰)가 당시 경극의 거장이었던 담흠배(谭鑫培)의 6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대표 무대였던 경극 《정군산》의 핵심 대목을 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 영화의 탄생: 이것이 중국인이 스스로 촬영한 역사상 최초의 중국 영화 《정군산》입니다. 임경태는 자신이 운영하던 이곳 '대관루茶楼(당시 이름)'에서 이 영화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대관루는 "중국 영화가 탄생한 성지"라는 불멸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2. '디엔잉(电影, 영화)'이라는 단어가 태어난 곳
● 서양에서 영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 중국인들은 이를 '서양에서 온 그림자 연극'이라는 뜻으로 '서양경(西洋镜)' 또는 '피영희(皮影戏, 가죽인형극)'에 빗대어 불렀습니다.
● 그러나 대관루에서 중국 자체 영화를 상영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전기(电)로 영사하는 그림자(影)'라는 뜻의 '디엔잉(电影, 영화)'이라는 고유의 단어가 정립되어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3. 기네스북이 인정한 최초와 최고의 기록들
대관루 영화관은 중국 영화사의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운 곳입니다.
● 최초의 유성 영화관: 1927년, 중국에서 가장 먼저 소리가 나오는 '유성 영화'를 상영한 극장입니다.
● 최초의男女 동석(同座): 1930년 이전까지 중국 극장은 남녀가 유별하여 따로 앉아야 했으나, 대관루에서 중국 최초로 남녀 동석 제도와 가로 배열 좌석을 도입해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 최초의 입체(3D) 영화관: 1960년에는 북경 최초로 특수 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 영화관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 기네스북 등재: 한 자리에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단 없이 영화를 상영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운영된 영화관'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3. 자전거도 절대 멈추면 안된다
전문가를 구경하고, 12시에 고궁(자금성) 관람 예약이 있어서 가려고 하는데 택시도 없고,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정양문 근방에 오니 공안이 한 사람씩 모든 소지품을 검사합니다. 가방을 열어서 하나하나 모든 검사를 다 합니다. 이건 마치 전쟁중에나 하는 그런 검문 같았습니다. 12시까지 고궁을 가야 하는데 여기서 벌써 시간을 다 뺏기고....
겨우 모든 검사가 끝난 후, 자전거를 타고 천안문 광장을 가로 질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같이 간 일행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잠시 정차하였는데 어디서 공안이 황급히 다가오더니 빨리 가라고 소리를 칩니다. 난 아무리 둘러봐도 나 혼자밖에 없어서 의아해 하고 있는데 옆에 다가와서 빨리 가라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뒤에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까, 안된다고 여기 천안문 광장에서는 자전거도 멈추면 안된다고 하길래 천천히 가면서 일행과 함께 천안문 광장을 지났습니다. 곳곳의 사거리에는 공안들이 철두철미하게 교통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고궁의 정문인 남문쪽으로는 직접 이동하지 못하고, 측면을 돌아 고궁에 도착하였습니다.
전문가(정양문)에서부터 고궁(자금성)까지의 거리는 지도상으로는 바로 앞처럼 보여도, 워낙 광장의 규모가 거대하고 도보 통행 제한 구역이 많아 막상 걸어가려면 진이 다 빠지기 마련입니다. 순간 선택으로 공유 자전거를 선택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친 천안문 광장의 엄격한 소지품 검사와 "절대 정차 불가"라는 공안의 다급한 통제에 많이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천안문 광장만의 이 삼엄한 통제 메커니즘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1. 공항보다 철저한 소지품 검사의 이유: '안전 보장'의 최전선
천안문 광장으로 진입하는 모든 길목(지하도, 자전거 도로 포함)에는 예외 없이 삼엄한 검문소(안검처, 安检处)가 있습니다. 공항 검색대보다 까다롭게 느껴지셨던 이유는 이곳이 중국 정치의 심장부이기 때문입니다.
● 국가 최고 기관의 밀집: 천안문 광장 좌우에는 중국의 국회 의사당 격인 인민대회당과 국가박물관이 있고, 정면에는 천안문 성루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천안문 뒤편은 중국 최고 지도부의 집무실이자 거처인 중남해(中南海, 중난하이)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 상징성과 테러 방지: 천안문 광장은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공간인 만큼, 과거 기습 시위나 차량 돌진 사건 등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라이터, 칼, 인화성 물질은 물론이고 정치적 슬로건이 적힌 유인물 등 아주 작은 위험 요소까지 원천 차단하기 위해 샅샅이 검사하는 것입니다.
2. "자전거도 절대 멈추면 안 된다!" 정차 금지의 이유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자전거를 세웠을 때 공안이 달려와 다급하게 쫓아낸 것은 천안문 광장 주변 도로의 '특수 보안 규정' 때문입니다.
① 기습 시위 및 테러 모의 방지
천안문 광장 주변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곳에 머무르거나 멈춰 서는 행위 자체를 극도로 경계합니다. 누군가 멈추어 서면 순식간에 인파가 꼬이거나, 이를 신호로 기습적인 행동(현수막 시위 등)을 벌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공안들은 CCTV와 현장 순찰을 통해 '흐름이 멈추는 구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정체 요인을 즉각 제거하도록 훈련받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② 삼엄한 교통 안전 통제 (정양문~천안문 구간)
정양문을 지나 천안문 앞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중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고 중요도가 높은 왕복 10차선 이상의 대로(창안지에, 창안가) 주변입니다. 이곳은 중국 최고 지도부나 외국 정상의 의전 차량이 수시로 통과하는 길목입니다. 따라서 안전과 경호상의 이유로 모든 자동차, 오토바이, 심지어 공유 자전거와 보행자까지 지정된 통로를 따라 '정지 없이 신속하게 통과'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일행을 기다리는 정당한 이유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구역입니다.
여행자 관점에서의 생각 : 외국의 평범한 광장이나 관광지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듯한 통제이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과잉 경비' 구역인 셈입니다. 비록 잠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하고 안전한 구역을 자전거로 질주해 보았다"**는, 아무나 하지 못할 짜릿하고 독특한 베이징 여행의 생생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추가된 셈입니다.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도 무사히 고궁까지 진입하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바라본 천안문의 풍경이 더욱 강렬하게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